인삼의 세계사(설혜심)

중학교 때 설혜심 교수의 “그랜드 투어”를 읽고 말 그대로 반했다. 그 뒤로 “그랜드 투어”는 누군가 나에게 “읽을 만한 책 좀 추천해 줘.”라고 말을 걸면 항상 추천 목록에 포함시키는 책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학교 도서관 신간 코너에 설혜심 교수의 “인삼의 세계사”가 떡하니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봤다! 그렇게 이 책을 손에 넣고 읽기 시작했다.
“그랜드 투어”가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유럽의 조기유학 트렌드(?)를 세세히 다루듯이, “인삼의 세계사”도 당시의 신문 기사, 현대의 인삼 관련 논문, 그리고 당시에 출간된 인삼 논문까지 방대한 자료를 세세하게 꿰어 인삼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책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동양 작물 인삼을 유럽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중심적으로 다룬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홍삼 액기스를 쉽게 살 수 있는 시대이기에 인삼이 별거 아닌 듯하지만(아빠와 나는 수중에 홍삼 액기스가 들어오면 서로 먹으라고 전쟁……아니, 양보를 한다), 사실 인삼은 역사를 쥐락펴락한 작물이다. 17세기 초, 동인도회사를 통해 고려인삼이 유럽에 소개된 이후 인삼은 만병통치약이라는 이름 아래 유럽 귀족층의 사랑을 받는다(TMI인데, 라이프니츠도 인삼에 관심을 보이면서 중국을 방문하는 예수회 신부 그리말디에게 문의해 관련 정보를 얻기도 했단다. 미적분을 발견한 그 라이프니츠 말이다). 영국 왕립협회와 프랑스 왕립과학원 모두 인삼 관련 연구를 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인삼이 얼마나 유럽에서 각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던 중, 1716년 미국에서 화기삼(American ginseng, 고려인삼과 같은 속에 속하는 일종의 친척)이 발견된다. 유럽은 인삼의 수요가 중국에서 가장 많다는 것을 감안해 화기삼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이를 중국에 수출하면서 이윤을 쌓는다. 그러다가 1783년 미국의 독립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화기삼을 직접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한다. 이후 화기삼은 미국의 경제적 독립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독립국가 미국의 첫 수출품이 화기삼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하지만 그걸 왜 알아야 하지? (이건 방금까지 옆에 앉아있던 한민우가 나한테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신기하네. 근데 안 물어봤어. 그걸 내가 왜 알아야 되는데?” 아, 정말 학구적인 질문이다.) 왜냐하면 인삼의 유통 양상이 통상적인 세계 체제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인삼은 동양 작물이다. 서양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도태되어 마땅한 작물이었다는 말이다. 중국산 토복령(土茯笭, China Root: 청미래덩굴 뿌리로 관절통, 매독, 악성 종기, 수은 중독 등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처럼. 저자는 토복령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서구의 ‘근대식’ 의약학 정립 과정을 설명한다. 유럽인들이 우연히 토복령의 매독 치료 효과를 알게 되면서 토복령이 “기적적인 만병통치약”으로 미화되고, 그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대체재를 찾는 데 열을 올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메리칸 사르사(American Sarsaparilla)가 발견되어 이를 플랜테이션에서 대규모로 재배한다. 토복령은 가격도 싸고 공급도 안정적인 아메리칸 사르사를 따라갈 수 없었고, 점점 기억에서 잊힌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동반되는 것은 토복령 같은 ‘기적의 식물’을 둘러싼 ‘발견의 수사’이다. 그런데 유럽이 대체재를 찾기 시작하면서 중국산 토복령을 알게 된 과정에 대한 기억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대신 아메리칸 사르사를 ‘발견’한 과정은 인류의 엄청난 발견 혹은 혁신의 순간으로 미화되는 수순을 밟는다.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매독을 인류가 정복해가는 역사에서 토복령이 갖고 있던 약제로서의 권위를 삭제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약제와 그것에 대한 통제를 다루는 의학의 발전사를 ‘중국’을 뺀 채 유럽이 독점해가는 과정이었다. (286쪽)
이후 자메이카산 사르사는 ‘진짜(true)’라는 수식어를 부여받는 반면, 토복령은 1914년 영국 종합의학위원회(General Medical Council)의 약전에서 완전히 퇴출된다. 유효성분이 추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토복령이 보여주듯이, 약으로 인정되냐 아니냐는 그 작물의 효능보다도 유럽의 팽창이라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좌우된다.
발견되고, 찬양되고, 곧 도태된다. 유럽의 팽창 아래, 동양에서 발견되는 약재의 운명이다. 하지만 인삼은 달랐다. 평범한 풀뿌리 취급을 받게 된 토복령과는 달리, 인삼은 계속해서 약재로 여겨진다. 역설적이게도, 저자는 그 이유가 인삼에서 유효성분이 오랫동안 추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효성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은 계속 중국에 인삼을 수출해야 했다. 중국이 인정해 온 인삼의 약효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서구는 화기삼의 효력이 고려인삼과 동일하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메리칸 사르사가 토복령의 자리를 차지한 것과 달리, 고려인삼은 화기삼으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았다. 화기삼은 계속해서 고려인삼보다는 효력이 미심쩍은, 2등급 약재 취급을 받는다.
그렇게 서구는 결코 인삼과 화기삼의 교역에서 중심부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고려인삼은 일찍부터 한국-중국-일본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화기삼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계속해서 수출되지만 고려인삼에 밀려 ‘B급 상품’ 취급을 면치 못한다. 플랜테이션에서 대량 재배된 작물들이 ‘유럽 상품’ 라벨을 달고 전 세계로 공급되었던 것과는 딴판이다. 이를 모두 고려하면, 인삼은 서구 중심 역사관의 반례로 우뚝 서는 것이다. 자, 이게 바로 인삼의 역사적 행방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인삼이 유럽중심주의적인 월러스틴의 체제 분석을 거부하는 증거임을 못박는 ‘맺는 글(422-428쪽)’을 읽다 보면 일종의 쾌감마저 느껴진다. 기성 체제를 부순 반례를 발견하는 것은 항상 신나는 일이다. 그 기성 체제에 따르면, 나도 인삼과 같은 아웃사이더로 분류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인삼에 대한 괄시가 없지는 않았다. 통상적으로 인삼을 약재 취급하기는 했지만 유럽 약전에서는 퇴출했고, 심마니들을 지금도 문명에 속하지 않은 무법자들로 취급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삼은 살아남아서 지금도 액기스로, 사탕으로, 껌으로 우리 손에 들어온다. 그럼 난 이만 홍삼 액기스 마시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