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field Park (Jane Austen)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들 중 하나다. “오만과 편견”으로 아마 더 유명할 이 작가는 주로 가정에 콕 박혀 있는 여자들 이야기를 썼다. 응접실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바느질을 하다가,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그렇다고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안락하기만 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스틴의 여자들은 거의 모두 뼈를 깎는 고난을 겪는다. 가장 유명한 “오만과 편견”에서는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의 엄마와 여동생들이 매너가 없고 속물적이다. (그래서 그들의 뒤치다꺼리는 싹 다 엘리자베스의 몫이 된다.) 그리고 이 책, “맨스필드 파크”에서는 주인공인 패니 프라이스(Fanny Price)가 큰이모네 집에서 눈치를 보면서 살게 된다. 패니네 집은 가난하고 아이들도 많아서, 부자인 큰이모가 적선한다는 느낌으로 그 집 장녀인 패니를 자기 집에 데려와 기르겠다고 한 것이다. 패니를 데려오기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패니의 고난은 예정되어 있다. 이 점은 큰이모부인 토마스 경(Sir Thomas)의 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There will be some difficulty in our way, Mrs. Norris,’ observed Sir Thomas, ‘as to the distinction proper to be made between the girls as they grow up; how to preserve in the minds of my daughters the consciousness of what they are, without making them think too lowly of their cousin; and how, without depressing her spirits too far, to make her remember that she is not a Miss Bertram. I should wish to see them very good friends, and would, on no account, authorize in my girls the smallest degree of arrogance towards their relation; but still they cannot be equals. Their rank, fortune, rights, and expectations, will always be different. It is a point of great delicacy, and you must assist us in our endeavours to choose exactly the right line of conduct.’ (p. 9)
패니를 너무 좌절시키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자기의 딸들과 동등하지는 않음을 알게 해야 한다니. 이 말을 듣는 작은 이모인 노리스 부인(Mrs. Norris)는 그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패니에게 자기 주제를 알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패니는 감사한 줄 알라고 잔소리를 해 대는 작은이모와 권위적인 큰이모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이 없는 큰이모 사이에서 자란다.
이러니 패니의 삶이 순탄할 리 없다. 하지만 그런 패니의 삶에 손을 내미는 왕자님이 등장하는데, 바로 큰이모의 아들 중 한 명인 에드워드(Edward Bertram)이다. 문제는 이 젠틀맨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거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이웃집에 사는 메리 크로포드(Mary Crawford)인데, 설상가상으로 이 여자의 오빠인 헨리(Henry Crawford)가 패니를 좋아하게 된다. 그 와중에 큰이모의 딸들, 그러니까 패니의 사촌언니들은 또 헨리를 좋아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삼각관계를 넘어서 육각, 칠각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결말은 모두가 기대하듯이, 그 모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패니와 에드워드의 사랑이 이뤄지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로맨스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로맨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너무 흔한,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어서다. 하지만 “맨스필드 파크”는 우선 그 ‘다각관계’가 굉장히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로맨스에 물린 사람이라도 이야기에 중독되에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소설이 단순한 통속 로맨스 소설 범주를 벗어나게 하는 특징이 있다. 바로 작가의 분노가 알게 모르게 책장에 스며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헨리의 청혼을 거절한 패니가 심정을 고백하는 부분이 그렇다.
‘I should have thought,’ said Fanny, after a pause of recollection and exertion, ‘that every woman must have felt the possibility of a man’s not being approved, not being loved by some one of her sex, at least, let him be ever so generally agreeable. Let him have all the perfections in the world, I think it ought not to be set down as certain, that a man must be acceptable to every woman he may happen to like himself. . . (p. 277, 강조 표시는 내가 넣은 것이다.)
어떤 남자가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그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또한 그 남자를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다고 패니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사실 이 말 뒤에 이어지는 패니의 고백은 지극히 온건(?)하다. 패니는 헨리가 그 전에 자신을 좋아하는지 전혀 몰랐으며, 헨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애정을 품는 게 더 온당치 못한 일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부드러운 패니의 말투 속에서도 위의 인용문이 도드라지게 읽혔다. 어쩌면 오스틴은 기회를 직접 만들지 못하고, 주어지는 기회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무조건 받아들이도록 강제되는 당시 여성의 삶에 대해 이렇게 분노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는 오스틴의 소설들이 응접실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을 다루는 소품소설이라고 비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패니의 시간 대부분은 소파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는 데 쓰이니까. 하지만 패니가 단순히 앉아만 있는 사람은 아니다. 패니는 주어진 기회를 용기 있게 거절하고, 자신이 한 선택에 따르는 고통을 이겨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스틴의 천재성은 그러한 삶과 그 속의 사랑, 분노, 책임감 등의 감정들이 글로 쓰일 만큼 충분히 가치있는 것임을 인지한 데 있다고, 브론테를 만난다면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