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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과학적

사랑의 벡터적 해석

by 모비 딕 2019. 1. 19.

 사랑은 스칼라가 아닌 벡터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 개념을 쉽게 혼동해서, 사랑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양만 보고 당사자를 놀리곤 한다. 스칼라와 벡터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특히 사랑의 경우 둘을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스칼라는 질량, 부피, 속력 같은 물리적 양이다. 딱히 방향은 없지만, 분명 ‘어떤 양이 얼마만큼존재한다. 벡터는 방향이 있는 양이다. , 속도, 그리고 가속도 같은 것들이 벡터다. 스칼라와 벡터의 정의를 보면, 사랑은 스칼라인 듯하다. 두 사람 사이의 어떠한 깊이가 있는 감정이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타는 사랑, 엘리자와 다아시의 깊은 사랑, 그리고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풋풋한 사랑 등등. 하지만……속단하기는 이르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방향을 지닌다. 사랑은 벡터다.


 나는 이 사실을 풋풋했던 시절, B군에게서 배웠다. B군의 사랑(이라 표현하니 좀 웃기다. 우린 로미오+줄리엣과는 거리가 멀었다)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나의 벡터는…… 흠흠, 어쨌거나 주위 친구들은 벡터의 방향(B군-->)이 아니라 벡터의 크기에만 집중해 서동요’, 아니 ‘B군요를 부르며 내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B군의 사랑 벡터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벡터의 x성분과 y성분이 시간 t의 종속변수라는 사실이었다. 이를 물리용어로 운동한다’, 전문용어로 바람둥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벡터는 여느 카사노바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의 벡터는 등속 원운동하는 입자의 위치 벡터였.


R은 원 궤적의 반지름이고, ω는 각진동수이다(각속도라고도 한다). 각진동수는 특정 시간 동안 각이 얼마나 커지는지를 나타내는데, 바꿔 말하면 한 바퀴를 도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알려준다. ωπ이면? 한 바퀴는 2π라디안이니까, 2초면 한 바퀴를 다 돈다


 우리 위대하신 뉴턴 경은 등속 원운동을 분석하면서 신기한 특징을 몇 가지 알아냈다. 위치 벡터(변위 벡터라고도 한다)의 x성분과 y성분을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미분하면 각각 x방향과 y방향으로의 속도와 가속도를 구할 수 있다.

위치 벡터와 속도 벡터를 곱해 내적을 계산하면이라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는 서로 직각이다(내적이 뭔지, 왜 곱이 0이면 직각인지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하자. 이걸 지금 하면 이 글의 장르는 로맨스에서 대하소설로 바뀌고 만다)! 게다가, (-) 때문에 는 와 정반대 방향을 향한다. 원운동의 숨은 공범들을 표시하면, 위에 있는 그림은 이렇게 변한다.


(의 크기는 ω에 따라 보다 더 길 수도, 더 짧을 수도 있다.)


 B군의 는 열심히 빙글빙글 돌았다. B군의 벡터는 나를 향하다가도 곧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렸고, 잊을 만하다 싶으면 다시 나를 향했다. 안타깝게도, 원운동을 관찰한 그 오랜 기간 동안 나는 각진동수를 계산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B군이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아마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다시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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