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한문은 더 이상 쓰지 않는, 죽은 글자다. 하지만 정민 교수가 누구인가. 오래 전에 죽은 것만 같았던 한문학의 대나무숲에 바람을 불러일으켜 나무들이 일어나 노래하게 하는 능력자다. 그의 책은 항상 그 옛날, 붓을 들고 이 글을 썼을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그중에서도 “비슷한 것은 가짜다”는 연암 박지원의 글에 매료되어, 새벽까지 읽은 마법의 책이다. 이번에 읽은 책, “한시 미학 산책”은 정민 교수가 그런 마법의 능력을 한시 분야에 쏟아 써낸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쓰인 한시는 변화하는 사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삶의 단편을 모두 담아낸 문학작품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시를 쓰고, 서로의 시를 읽으며, 시로 소통했다. 그리고 시에 미쳤다. 시에 미친 사람들은 자신에게 들어온 ‘시 귀신’, 즉 ‘시마詩魔’를 쫓아내려고 했다. 10장, ‘미워할 수 없는 손님—시마론詩魔論’에는 시마와 관련된 글들이 잔뜩 소개된다. 그런데 시마에 걸린 사람들이 호소하는 증상이, 과학에 미친 사람들의 증세와 똑같다. 이규보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오고부터 모든 일이 기구하기만 하다. 흐릿하게 잊어버리고 멍청하게 바보가 되며, 주림과 목마름이 몸에 닥치는 줄도 모르고, 추위와 더위가 몸에 파고드는 줄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계집종이 게으름을 부려도 꾸중할 줄 모르고, 사내종이 미련스러운 짓을 해도 타이를 생각을 않는다. 동산에 잡초가 우거져도 깎아낼 줄 모르고, 집이 쓰러져가도 고칠 마음이 없다. 재산 많고 벼슬 높은 사람을 깔보며, 방자하고 거만하게 언성을 높여 겸손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중략…) 이 모든 것이 다 네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268쪽, 이규보 <구시마문驅時魔文> 중에서)
그는 시마를 비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죄목을 나열한다.
첫째, 세상의 인정도 받지 못하면서 붓만 믿고 나대게 하는 죄. “사람들은 아무도 너를 장하다 하지 않는데 어찌 이다지 날뛰는가?” (270쪽) 과학자도 똑같다. 아무도 공을 알아주지 않지만 실험이 성공하면 기쁘다. 내 논문 내용을 설명했을 때 이해하는 가족은 한 명도 없지만 그래도 즐겁다.
둘째, 천기를 누설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봄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 “하늘이 놀랄 만큼 그 마음을 꿰뚫어보기에 신명은 이를 못마땅해하고 하늘은 불평하게 여긴다. 결국 너 때문에 사람의 삶이 각박해진다.” (270쪽) 과학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다. ‘천기를 누설’하는 것으로 욕 먹을 사람을 호출한다면 과학자는 아마 가장 먼저 불려갈 것이다.
셋째, 삼라만상의 온갖 형상을 그려내면서 교만하게 구는 죄. “천지에 가득한 구름과 노을의 아름다움, 달과 이슬의 정기, 벌레와 고기의 기이함과 새 짐승의 괴상함, 싹틔워 꽃 피우는 초목의 천만 가지 현상을 제멋대로 가져다가 보는 대로 읊조려 붓끝으로 옮기니 네 교만함을 하늘과 땅과 신명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270-271쪽) 컴퓨터로 기후 모델을 구축하며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고, 초기 지구의 생명 탄생 과정을 프로그래밍하는 과학자들이여, 어찌 그리 교만하게 세상의 모습을 몽땅 그려낸단 말인가?
넷째, 제멋대로 상 주고 벌 주는 죄. “비위에 거슬리면 공격부터 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곤룡포 없이도 임금으로 꾸며주며, 미운 사람은 칼 없이도 찔러대니, 무슨 권리로 상벌을 멋대로 하는가.” (271쪽) 권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학자가 얼마나 놀라운 이론을 발표했는가, 그것뿐이다. 그런 이에게 과학은 노벨상이라는 왕관을 수여한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도 ‘뉴턴이 중력을 발명했다’와 같은 말을 하면 가차없이 지적을 받는다. “발명이 아니라 발견입니다, 각하.” 과학이 뭐길래 그렇게 포상을 주고, 공격을 하는가?
다섯째, 씻지도 않고 끙끙대며 고민을 해서 온갖 근심을 불러일으키는 죄. “머리는 헝클고 수염은 빠지며 몸은 비쩍 말라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며, 가슴을 앓게 한다.” (271쪽) 연구가 바쁜데, 피펫을 놓고 샤워부터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안 풀리는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다 보면 씻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 연구실에서 머리 떡진 사람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정민 교수는 말한다. 한시의 미학은 오늘날 우리의 현대시에도 남아 있다고.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고, 잡힐 듯도 하고 놓칠 듯도 한 의미를 은근히 전달하는 능력은 두 분야 모두 지니고 있다고. 그런 점에서는 고금(古今)이 같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시에 미친 사람들의 광기는 오늘날 과학에 미친 이들의 광기와 같다. 시대와는 상관없이, 무엇인가에 제대로 미쳐 임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매력적인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한시 미학 산책”에서 옛사람들의 그러한 빛을 발견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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