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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 땜질에 좋은 활동/독서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by 모비 딕 2020. 11. 2.

 “자기만의 방“3기니는 성별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더 나은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고 믿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다.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책이지만, 사실 울프가 처음 자기만의 방을 쓰는 계기가 된 강연을 맡았을 때, 주최측에서 제시한 주제는 페미니즘이 아니고 여성과 픽션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하던 울프는 곁길로 새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다. 여성이 픽션을 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500파운드(현대 기준으로 환산하면 4700만 원 정도)의 연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녀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경로를 책 한 권에 걸쳐 설명한다.

 

 왜 여성 소설가는 19세기부터 등장할까? 문학에 재능이 있는 여성은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아서? 아니다. 똑똑한 여성은 항상 있었다. 그저 그 재능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가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을 피해 달아나는 마녀, 악마에 사로잡힌 여자, 약초를 파는 현명한 여인, 또는 어느 탁월한 남성의 어머니에 관해서 읽게 될 때, 우리는 잃어버린 소설가나 억눌린 시인, 즉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브론테에 필적할 만한 재능을 갖고 있지만 그 재능으로 인해 고통받고 제정신을 잃어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길거리를 방황하거나 황무지에서 발광하여 자신의 머리를 부숴버린 무명의 말 없는 작가를 추적할 만한 단서를 얻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76)

 

 똑똑한 여성들은 기둥에 묶여서 통구이가 되지 않기 위해, 돌과 함께 자루에 담겨 강에 던져지지 않기 위해, 혹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재능을 숨겼다. 이 모든 이야기가 추상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할 사람들을 위해, 울프는 셰익스피어의 여동생 이야기를 풀어낸다. 진짜로 셰익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신경쓰지 말고, 그냥 그에게 여동생이 있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재능 있는 여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빠가 런던 한복판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이, 억지로 결혼시키려는 부모님과 대판 싸우고 집을 탈출할 것이다. 하지만 런던 연극계는 그녀를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재능은 영영 땅속에 묻히겠지. 그렇다.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여자들은 그 재능을 썩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억눌린 재능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울프는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억압이 낳은 광기의 단서를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소설에서 발견한다. 특히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울프는 여자라는 이유로 재능을 펼치지 못한 브론테의 울분을 읽어낸다.

 

그러나 그것[“제인 에어”]을 반복해서 읽어보고 그 안의 경련과 분노를 주목한다면, 그녀가 결코 자신의 재능을 흠 없이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의 책들은 불구가 되고 비틀릴 것입니다. 그녀는 고요히 써야 할 곳에서 분노에 싸여 쓸 것이고, 현명하게 써야 할 곳에서 어리석게 쓸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등장인물에 대해 써야 할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격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비틀리고 꺾인 그녀가 젊은 나이에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107)

 

, “제인 에어의 인용 부분에서, 소설가 샬럿 브론테의 성실성을 분노가 방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녀는 개인적인 비탄에 신경을 쓰느라 마땅히 자신이 전념했어야 할 이야기를 그만 내버린 것이지요. 그녀는 자신에게 적합하고 응당 누려야 할 경험에 굶주렸다는 사실을 기억했지요. 세상을 자유로이 방랑하고 싶을 때, 그녀는 목사관에서 양말을 기우며 침체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상상력은 분노로 인해 빗나갔고, 우리는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112)

 

울프는 그것 보라고 말한다. 여자들이 재능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면, 그 재능을 먼산을 쳐다보거나 빨래하는 데 소모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은 소설을 쓸 수 있었을 거라고. 분노나 무력감에 감정을 소진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매년 500파운드의 연금이 들어와서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에게 손을 벌릴 필요가 없었다면, 자유롭게 살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 진실한 글을 쓸 수 있었을 거라고. 귀찮게 찾아오는 손님들을 항상 접대해야 하는 거실이 아니라, 마음대로 문을 잠글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면 글쓰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을 거라고. 결국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500파운드의 연금과 자기만의 방이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결코 이미 늦었다고 울부짖고 있는 게 아니다. 강연 끝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강연의 중간에서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다고 여러분에게 말했지요. (…중략…) 그녀는 여러분 속에 그리고 내 속에, 또 오늘 밤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이곳에 오지 못한 많은 여성들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녀는 살아 있지요. 위대한 시인은 죽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계속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속으로 걸어 들어와 육체를 갖게 될 기회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힘으로 그녀에게 이런 기회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백 년 정도 살게 되고 (우리가 개인으로 살아가는 각자의 짧은 인생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라 말할 수 있는 공동의 생활을 언급하는 겁니다.)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중략…) 그때에 그 기회가 도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종종 스스로 내던졌던 육체를 걸칠 것입니다. 그녀의 오빠가 그러했듯이, 그녀는 선구자들이었던 무명 시인들의 삶에서 자기 생명을 이끌어내며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 작업 없이, 우리 편에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녀가 다시 태어날 때 그녀가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다고 느끼게끔 만들겠다는 결단 없이, 그녀가 출현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위해 일한다면 그녀가 출현하리라는 것과, 비록 가난한 무명인의 처지에서라도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171-172)

 

어떻게 이 인용문보다 더 울림이 있는 문장으로 글을 맺을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요, 울프 씨, 비록 보잘것없는 고등학생의 처지에서라도, 당신과 동일한 목적을 위해 자기만의 방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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