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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 땜질에 좋은 활동/독서

고통(마르그리트 뒤라스)

by 모비 딕 2022. 2. 4.

1990년대에 나온 책이다. 책 맨 뒤에 독자가 출판사에 보낼 수 있는 엽서도 붙어 있었다. 타임머신을 보는 느낌이랄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름은 프랑스어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접했다. 한창 가정법에서 쓰이는 시제들 때문에 머리가 아플 때 교수님은 예문을 하나 들고 오셨는데, 그 예문이 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었다. 수학 공식처럼 외우던 시제 사용법이 진짜로 프랑스인들이 말하고 쓰는 방식이라는 게 신기했고, 진짜 프랑스 사람이 쓴 문장이 이해가 되는 게 신기했으며, 그렇게 풍부한 감정이 담긴 문장을 아무 감정도 없이 시제 분석을 하고 있는 우리 모습이 신기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이 책을 읽겠다고 벼르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예문으로 접한 지 반 년 만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고통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혼자서 포로로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는 뒤라스의 기록이다. 제목처럼, 책은 기다림이 수반하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뒤라스는 기다림의 고통이 너무 커서 본인의 몸을 돌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기다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기 위해서, 혹은 기다리는 동안 뭐라도 하고 싶어서 일을 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귀국한 포로들을 만나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전쟁 포로들의 소식을 수합하고, 이를 그 포로들의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어떤 포로가 살아 있고, 곧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녀는 그 가족의 집을 찾아가 소식을 전한다. 다른 포로가 일주일 전에 죽었음을 알게 되면 마찬가지로 그 가족을 찾아가 알린다. 그 소식이 좋든 나쁘든 가족이 알도록 한다. 왜냐하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채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을 마주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뒤라스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본인이 그 기다림을 경험하고 있기에.

 

 책은 뒤라스의 기다림뿐만 아니라, 뒤라스 본인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면서 만난 독일 측 장교 이야기와 전쟁이 끝날 때쯤 직접 심문한 독일 전쟁 포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죽음을 매일 마주하면서 독일 장교를 속이는 레지스탕스의 심정이나, 용서와 응징을 두고 갈등하는 심문자의 감정은 매일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에어팟을 낀 채로 걸어다니는 우리들에게 생경하다. 그래서 왜 우리가 겪지도 않을 전쟁에 대해 알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고, 느낄 필요가 없는 고통을 텍스트로 배우는 것이 청승을 떠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과 고통의 기록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고통의 극한과, 궁지에 몰렸을 때에도 고민을 멈추지 않는 지성이 그 기록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뒤라스의 고통은 가치있다. 그녀의 책과 그녀의 감정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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