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두 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잇는 작품이다. 온전히 기억만을 의지해서 쓴 앞 두 책과는 달리, “그 남자네 집”은 소설적 상상력이 더 가미되었다는 점에서 결이 약간 다르다. 하지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끝난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그 이후 박완서 작가의 인생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남자의 집”이 앞의 두 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앞의 두 책과 비교하며 이해하게 되었다.
이전의 두 자전적 소설은 자신이 어떻게 이러한 과거를 지니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면, “그 남자네 집”은 과거에 대한 초점을 자신으로부터 타인에게까지 확장해서 적용한다. 어쩌면 이는 고통을 겪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다른 이들의 삶으로 내 세계의 경계를 확장하는 모습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확장’은 책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서술자가 던지는 질문을 제목으로 삼은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이 책은 “그 남자네 집”이다. 남의 집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사람들의 과거를 이해하고 품기 위한 이야기인 것이다. 제목의 ‘그 남자’는 박완서의 첫사랑이다. 그러나 첫사랑의 대상이었던 그 남자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는다. 남편 이야기, 결혼 이후 모시고 살게 된 시어머니 이야기, 자신의 후임으로 미군부대에 취직시켜 준 춘희 이야기, 그리고 돈이 부족하면 찾아와 ‘개개는’ 조카 광수 이야기까지. 그 모든 이들의 삶을 영웅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쁜 면만을 보여주지도 않고, 그저 그 사람 자체를 조명한다.
책을 덮고도 가장 강한 여운이 남는 장면은 17장에 나오는 춘희의 독백이다. 미군부대에 취직한 춘희는 동생들을 더 잘 먹이기 위해서 매춘을 시작하고, 이후 미군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뒤 동생들까지 모두 미국에 정착시킨다. 어떻게든 삶을 일구려 했던 춘희의 지난한 노력이, 노인이 된 뒤 서술자에게 전화를 거는 그녀의 목소리에 담담하게 묻어난다. 할머니가 되어 기분 좋게 취한 채로 새벽에 거는 국제전화. 성스럽게 치장되지도, 그렇다고 청승맞게 구겨지지도 않은 고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시공간 땜질에 좋은 활동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When We Cease to Understand the World (Benjamín Labatut) (0) | 2022.04.02 |
---|---|
미망(박완서) (0) | 2022.02.16 |
고통(마르그리트 뒤라스) (0) | 2022.02.04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박완서) (0) | 2022.01.28 |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스반테 페보) (0) | 2022.01.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