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공간 땜질에 좋은 활동/독서

A Mathematician's Apology (G. H. Hardy)

by 모비 딕 2020. 12. 1.

11층 면학실에서 각 잡고 있는데 친구가 보고 있다가 찍어줬다. 나보다 훨씬 잘 찍는다. 히히

 사람마다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방문하고 싶은 곳이 다르다. 세종 시대의 한양, 이슬람 황금기의 지혜의 집, 고흐가 살 때의 프랑스 오베르 등등. 나의 선택은 20세기 초 케임브리지다. 1900년대 초반의 케임브리지는 그 자체로 온전한, 독특하고 작은 하나의 세계였다. 러셀, 하디, 라마누잔, 리틀우드 등의 수학자들이 수학에 빠져 살던 곳. 그들이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과는 전혀 관계없는 질문들에 매진해서, 그 당시의 케임브리지는 그렇게 외롭고도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지도 모르겠다.

 

 “A Mathematician’s Apology”는 그 시대를 살았던 고트프리 해럴드 하디의 에세이다. 하디는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의 주인공, 라마누잔을 발굴해내 공동 연구를 진행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생명과학에서 진화 파트를 배운 적이 있다면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을 들어 봤을 텐데, 그 하디가 이 하디 맞다.) 이 책은 그 공동연구도 옛날 일이 된 시점에서, 하디가 자신의 연구 인생을 정리하며 쓴 책이다. "어느 수학자의 변명"이라는 제목대로, 수학을 왜 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수학자가 할 법한 변명을 담고 있다. 하디는 말한다. “왜 그 직업을 택하셨어요?”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대답을 한다고. 첫 번째 대답은 , 잘 하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이다. 그리고 두 번째 대답은 그 직업 분야에 대한 예찬이다. 그러면서 하디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수학에 대입해 수학자의 변명을 구성한다.

 

첫 번째 대답: 잘 하는 게 수학밖에 없어요

 

이 말은 어떤 직업인이든 종종 하는 변명이다, 라고 하디는 썼다. 크리켓 선수는 잘 하는 게 크리켓밖에 없다고 말할 것이고, 회계사는 잘 하는 게 계산밖에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수학자에 대해서는 특히 이 대답이 참이다. 왜냐하면 수학적 재능은 다재다능함에서 아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의 재능은 수학에 특화되어 있는데, 그 말은 수학이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잘 하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뜻이다. 수학적 사고 방식은 다른 분야에 쉽게 적용할 수 없다. 수학을 하도록 타고났다면, 수학을 할 수밖에 없다.

 

It is undeniable that a gift for mathematics is one of the most specialized talents, and that mathematicians as a class are not particularly distinguished for general ability or versatility. If a man is in any sense a real mathematician, then it is a hundred to one that his mathematics will be far better than anything else he can do, and that he would be silly if he surrendered any decent opportunity of exercising his one talent in order to do undistinguished work in other fields. Such a sacrifice could be justified only by economic necessity or age. (p. 70)

 

하디의 이 말은 자존감이 떨어져 있던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수학을 잘 하면 수학밖에 못 한다고? , 그럼 난 다른 걸 잘 하면 되겠군. 좋아, 희망이 생겼다. (물론 하디는 같은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Most people can do nothing at well.” ……이건 넘어가자.)

 

두 번째 대답: 수학은 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서 하디는 수학 그 자체를 방어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포자가 많았던 것은 똑같다. 그러나 하디는 당당하게 외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수학을 좋아한다고. 사람들은 신문에 나오는 체스 퍼즐 풀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그 당시의 체스 퍼즐은 오늘날로 치면 <문제적 남자>에 나오는 두뇌 퀴즈 같은 것이다.) 그게 바로 수학이다. 애초에 인간은 수학을 좋아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디는 여기서 잠깐 동안 진짜 수학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지면을 할애한다. 물론 체스 퍼즐도 수학이지만, 좋은 수학이라 하기는 어렵다. 진정한 수학은 두 가지 핵심 가치를 지녀야 한다. 그건 바로 (뉴런이 지글지글 타는 난해성과 고통이 아니라) 아름다움(beauty)과 중요성(significance)이다. 이건 엄청난 시도다. 왜냐하면 수학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은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수학을 하면서 느껴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영을 배우듯이, 자전거를 타듯이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하디는 예시로 소수의 무한성과 √2의 무리수적 성질 증명을 들고 나온다. 이것 봐. 간결하지? 신기하지? 진짜 수학은 이렇게 아름답고 심오한 거야.

 

 나에게도 이렇게 수학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느끼게 해 준 증명이 있다. 바로 샌드위치 정리와 정적분의 수렴 증명이다. 엡실론-델타 논법으로 증명한 샌드위치 정리를 처음 접할 때는 그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 정적분의 수렴 증명에 나와서 중요한 정리를 뙇 이끌어내는 걸 본 순간, 마치 50년 전에 같이 놀던 친구가 UN 사무총장이 된 걸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라고밖에 표현을 못 하는 자신이 한심했는데, 하디는 이걸 이렇게 간명하게 설명한다.

 

We may say, roughly, that a mathematical idea is ‘significant’ if it can be connected, in a natural and illuminating way, with a large complex of other mathematical ideas. Thus a serious mathematical theorem, a theorem which connects significant ideas, is likely to lead to important advances in mathematics itself and even in other sciences. (p. 89)

 

그러니까, 내가 샌드위치 정리에 감명받은 이유는 그 정리가 정적분의 수렴이라는 심오한 사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디는 내가 말로 풀어내지 못한 감정을 정확히 짚어냈다. 수학적 증명에 유통기한이 없는 것처럼, 하디의 통찰에도 유통기한이 없다. 

 

 물론 하디의 말들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있다. 하디는 수학이 무해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다른 과학에 대해서까지 확대하려는 의지를 엿보인다.

 

It can be maintained that modern warfare is less horrible than the warfare of pre-scientific times; that bombs are probably more merciful than bayonets; that lachrymatory gas and mustard gas are perhaps the most humane weapons yet devised by military science; and that the orthodox view rests solely on loose-thinking sentimentalism. (p. 141-142)

 

과학 무기를 동원한 전쟁이 이전 전쟁보다 덜 잔인하다고? 이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명제다. 그런데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하디의 말은 자칫하면 전쟁을 위한 과학을 것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들리기에 위험한 발언이다.

 

 하디의 말투는 차갑고, 그의 문체는 격식 있게 딱딱하다. 냉소는 그의 특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에세이는 수학 문제를 풀다 지친 나의 심신을 위로해 주었다. , 그래. 원래 수학은 이렇게 아름답고 심오한 거였지. 내가 이래서 수학을 하겠다고 덤볐지. “A Mathematician’s Apology”는 길 잃은 나의 좌표를 원점으로 평행이동시켜준 책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