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항상 힘들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 내용이 마음을 휘감아 숨이 막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들 없이 삶을 지탱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공감 없이 고통을 견뎌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하미나 작가는 한 명의 과학사 연구자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우울증 환자로서 여성 우울증의 역사와 그 원인을 파헤친다. 여성 우울증의 역사는 부정의 역사다. ‘히스테리아’라고 불린, 여성에게서 나타난 정신 이상 증세가 어떻게 이해되고 또 부정되었는지,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들의 우울증이 단순한 ‘엄살’로 취급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강인하고,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1896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아의 병인학 The Aetiology of Hysteria>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히스테리아를 앓는 여러 여성 환자를 만나 면담한 뒤, 프로이트는 아동기 성학대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히스테리아가 발생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중략…)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후 자신의 이론을 수정한다. 왜? 히스테리아는 여성들에게 너무나 만연한 질병이었다. 여성 환자들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당시 유럽 부르주아 사회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남성 지식인은 가해자가 되고 만다. 이것은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진실이었다. 1905년경 프로이트는 자신의 히스테리아 이론을 수정한다. 히스테리아 환자들은 아동기에 성적 욕망을 억압당하는 과정에서 성학대 경험을 상상해 낸다. 그들의 경험은 지어낸 것이다. (…중략…)
나는 프로이트를 포함한 남성 치료사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어렵게 털어놓았을 여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과 수치심을 떠올린다. 그것을 기리고 싶다. 나는 그들을 믿는다. (32-34쪽)
여성 우울증의 역사가 부정의 역사라면, 그 치료는 부정을 긍정으로 바꿈으로써 이루어진다. 우울증이 질병임을, 그 원인은 실재하는 고통의 기억임을 긍정할 때 치료는 시작된다. 이를 위해 저자가 탐구하는 것은 바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의 서사이다. “의학 지식에서 한 발짝 물러나 해주는 대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픈 몸을 가진 주체로서 그리고 자기 몸의 전문가로서 치료 과정에 함께”(261쪽)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이 글을 쓰다 바로 윗줄에서 손을 멈췄다. 책에 나와 있는 그 고통의 서사를 몇 줄로 요약하려 한 스스로가 부끄럽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삶을 깊이 알지 못하는 내가 간추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고통을 부정하는 사회와 치열하게 싸운 작가의 글을 직접 읽어봐야 한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이해받지 못한 그들을 이해하고 치유하려 시도한 책이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는 글을 읽으며 나 또한 나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나도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임을 깨닫는다. 연대를 통해 우리가 이 거대하고 어두컴컴하고 온통 뒤죽박죽인 괴물과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부분에서 공감했기에,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책장에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어쩌면 너무 많이 공감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글은 좋은 글이 아닐지 모른다. 내게 한 걸음 뒤에서 이 책을 바라보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미약하게나마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이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또는 그런 이에게 이 책을 소개하는—그럼으로써 자신과 다른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계기를 마련하는—순기능을 하기를 소망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말한다.
이야기를 털어놓고, 이를 들어주고, 또 믿어주고, 서로가 연결되며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고, 여러 자원을 통해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억울함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알고, 나아가 이것을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한’ 고통으로 만들며, 스스로 자신의 고통에 다시 이름을 붙이는 과정까지. 이 작업의 전체 과정이 내가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누구도 대신 해주지 않아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한 일이었다.
고통은 이야기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의 몸과 마음속에 꺼내지지 않은 수많은 고통이 들어 있다. (300쪽)
젊은 여성들의 우울증을 탐색하는 것은 고통에 대처하는 새로운 문화를 찾아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기 상황에서 새롭고 자발적인 연대가 이루어지고, 타인의 고통을 폄훼하거나 섣불리 지워버리지 않고, 취약함을 공유하고 내보이는 것. 상실한 것을 충분히 애도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고통이 그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면, 고통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제야 나의 고통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309쪽)
고통을 망각하려고 노력하다가 스스로를 더 아프게 하지 않고, 고통을 이야기하다가 주저앉지도 않는 것. 그 고통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계를 찾아나서는 것.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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